"덕장의 품격" 박경훈, GK 전태현 춤추게 하다

  •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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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을 보면 ‘극과 극’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눠졌다고 다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우승 경쟁을 펼치는 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려는 팀, 강등 탈출에 안간힘을 쓰 는 팀 등 구단마다 제각각 목표가 다르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팀이 있다. 바로 제주 유나이티드다. 제주는 지난 9월 초 상하 스플릿 갈림길에서 고배를 마시 며 하위 스플릿행 열차를 탔다. 썩 개운치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박경훈 감독은 기존 베스트 11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내년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기본적인 뼈대가 남아 있 는 상태에 자주 경기에 나서지 못한 몇몇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그 중 1년 중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 손대기 힘 들다는 골키퍼도 바꿨다. 그 주인공이 바로 고작 시즌 5경기 출전(성남전 포함)한 전태현이다. 전태현은 10일 성남 일화와의 K리그 클래식 36라운드에서 시즌 내내 골문을 지켰던 박준혁의 빈자리를 메웠다. 박준 혁은 올 시즌 제주의 후방을 든든히 사수하며 No.1 골키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날 박준혁은 특별한 부상 도 아니었고, 대기명단에 포함돼 있었기에 전태현이 나선 게 의아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 그 의문은 풀렸다. 경기 초반 제주는 성남의 공격패턴을 파악한 듯 전체 라인을 내린 후 빠 른 역습을 구사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 득점 기회가 찾아온 제주는 전반 19분 아크 부근에서 시도한 배일환의 슈팅 이 김평래의 몸을 맞고 득점으로 연결됐다. 이후 성남은 악착같이 달려들며 제주의 골문을 노렸다. 후반 들어 성남은 더욱 공세를 올리며 제주를 압박했는데 전 태현의 신들린 선방이 이어졌다. 후반 28, 29분 김동섭의 골이나 다름 없는 슈팅을 연달아 막아냈다. 경기 막판에는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제주를 위기에서 구했다. 후반 42분 황의조의 강력한 중거리포를 손 끝으로 쳐냈다. 성남의 유 효 슈팅 6개를 선방하며 팀에 승점 3점을 안겼다. 경기 후 박 감독에게 전태현 카드를 꺼낸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난 전남(9월 30일), 강원(10월 9일), 대전(10월 20일)전에서 괜찮을 모습을 보였다. 오늘 경기를 통해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며 “전태현은 큰 키를 바탕으로 한 제공권과 뒤에서 수비를 조율해주는 능력이 탁월하 다. 키가 크지만 순발력도 갖추고 있어 낮은 볼 처리도 잘하고, 쉽게 실점하지 않는다. K리그에서 정상급 기량을 갖췄 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다음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박 감독은 “사실 전태현은 올 시즌을 끝으로 경찰축구단에 입대 한다. 시즌이 얼 마 안 남았지만 충분이 능력이 있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여기서 컨디션을 끌어 올려 경찰축구단에 가서 주전 자리 를 꿰찼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전태현의 기용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타이틀도 없고, 동기부여도 어려운 마당에 으레 ‘서브 골키퍼를 기용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보통 감독 들이라면 입대를 앞둔 선수라 더욱 꺼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자신의 제자가 제주에서 좋은 기억을 안고, 더 몸을 끌어 올려 경찰축구단에 입대 하길 바랐다. 이에 전태현은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박 감독의 기대에 부응, 추운 날씨에 경기장을 찾은 홈팬들에 승리 를 선물했다. 이런 게 바로 제자를 위한 스승의 마음 아닐까. 박 감독의 전태현 기용은 덕장의 품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