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은퇴 정조국의 진심 " 모든 한순간 한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 2020-12-09
  • 7342

첨부파일 (0)



제주유나이티드(이하 제주)의 '패트리어트' 정조국(36)이18년 동안 화려했던 프로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정조국은 12월 9일(수)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2003년 K리그 데뷔 후 18년간 프로생활을 이어왔던 정조국은 고심 끝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정조국은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제가 '선수 생활을 감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셨던 팬분들, K리그 구성원 여러분, 함께했던 팀 동료, 선후배, 지도자분들게 감사하다. 축구 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제 2의 인생으로, 축구인, 지도자 정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조국은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대형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대신고 재학시절 한 시즌 4개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3학년이었던 2002년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에 연습생으로 합류하며 화제를 모았다. 2003년 안양LG(현 FC서울)를 통해 프로에 첫발을 내딛은 정조국은 그 해 탁월한 골 감각으로 총 12골과 함께 신인왕을 거머쥐며 '패트리어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후 2020년까지 K리그에서만 총 17시즌을 활약하며 개인 통산 K리그 392경기 출장 121골 29도움을 기록,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리그의 인기와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정조국은 서울, 경찰청, 광주, 강원, 제주 등 총 5개 팀에 몸담으며 K리그1 우승 2회(2010, 2012 서울), K리그2 우승 1회(2020), FA컵 우승 1회(2015, 서울), 리그컵 우승 2회(2006, 2010) 등 총 6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또한 정조국은 각급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했고, 지난 2011년~2012년에는 프랑스 리그에 진출해 AJ오세르와 AS낭시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정조국은 개인상으로 K리그 신인상(2003년), FA컵 득점왕(2004년), 리그컵 MVP(2010년)을 수상함과 더불어 2016년에는 광주FC 소속으로 총 31경기 출장 20골을 기록하며 최다득점상,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최우수선수상을 휩쓸었다. 리그 우승팀이나 준우승팀 소속이 아닌 선수가 해당 시즌의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사례는 현재까지 정조국이 유일하다. 또한 K리그에서 신인상, 최우수선수, 최다득점상을 모두 수상한 선수는 정조국과 이동국, 신태용 3명 뿐이다. 

2016년에는 광주에서 '제2의 전성기'를 함께한 남기일 감독의 부름을 받아 올 시즌 제주유나이티드에 합류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당당한 조연이자,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친 최고의 페이스메이커로 K리그2 우승과 승격이라는 금자탑을 자신의 커리어에 가로 새겼다. 특히 정조국은 6월 20일 충남 아산 원정(2-0)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트리며 제주 이적 후 첫 골과 함께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150개(121골 29도움) 고지에 올랐다. K리그 역사에서 공격포인트 15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정조국 포함 10명에 불과하다. 

정조국은 2020시즌 종료 후 자신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게 고민했다. 결국 정조국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오랜 고심 끝에 힘들게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정조국은 지난 11월 30일(월)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개최된 '하나원큐 K리그 대상 시상식 2020' K리그2 부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그동안 축구선수로 살아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라운드에서 받은 사랑, 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 계속 보답하고자 한다"라며 이미 현역 은퇴 의사를 전한 바 있다. 

다음은 정조국과의 일문일답

-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3~5개월 전부터 고민을 했다.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고 일어나서 내려놔야지라고 했는데, 다음날 또 생각이 바뀌었다.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자신을 많이 괴롭히고 있었다. 멘탈적인 부분이 힘든 것을 느꼈다. 스스로 버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된 고뇌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됐다. 지금 당장도 '더 할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생각을 하겠지만 내려놓는 게 어려운 것 같다.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다음 스텝을 가기 위해 더 늦어지기 보다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제 의지로 내려놓고 싶었다. 그로 인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

- 자연인으로서 삶이 어떤가. 가장 영광스러웠던 기억과 아쉬운 기억을 알고 싶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선수 때도 지금이 휴가기간이라 아직 실감이 안 난다. 1월 월급날이 돼야 실감이 날 것 같다. 지금은 정신 없이 아이들을 보면서, 그동안 못 해왔던 아빠의 역할, 남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 만은 행복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건 사실이다. 동계 훈련 준비를 안 해도 되니,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1월에 월급이 안 들어봐야 이제 백수구나 생각할 것 같다.

저에게 가장 뜻 깊었던 것은 처음이다. 안양의 유니폼을 입고 첫 데뷔무대가 생각난다. 전남드래곤즈 원정이었다. 나는 아마추어였구나, 프로는 다르구나라고 느꼈다. 속된말로 씹어먹을 줄 알았다. 어린 선수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정말 당돌했던 것 같다. 그 때 심정이 아직 설레고, 많이 생각난다. 그 때의 기분을 갖고 제 2의 인생을 준비를 하는데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준비를 착실히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 K리그에서 신인상, MVP, 득점왕을 다 해봤다. 더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나.

K리그에선 해볼 것 다해봤다. 상도 많이 받았다. 지금 또한 공격수다보니,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한 게 아쉽다. 놓친 찬스가 많았다. 그런 찬스 하나하나가 지금도 생각난다. 숫자로 남고, 기록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아쉽다. 그것 또한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모든 한순간 한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청소년 시절 유망주였는데, 유독 성인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선수로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변명일 수 있겠지만, 대표팀만 가려고하면 부상을 당했다. 대표팀에서 경기를 보러오면, 경기를 망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기대를 많이 받다보니 자만했던 것도 사실이다. 월드컵을 못 나갔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것 또한 감내할 부분이다. 저의 가장 큰 꿈은 선수로서 나가지 못한 월드컵을 지도자로서 나가고 싶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착오와 잘못된 준비의 경험으로 잘 준비할 예정이다.

- 큰 아들을 포함해 가족들이 해준 말이 있다면.

가족을 생각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나 가장 기쁠 때 누구보다 제 편이 되어줬고, 힘이 돼줬다. 그 누구보다 와이프가 많은 희생을 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제가 축구 선수이기 전에, 인간 정조국으로서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다.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렸던 와이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멋지게 떠나고 싶었는데, 가족 이야기가 나와 부끄럽긴 하다. 많이 미안한 게 사실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면서, 모시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첫째도 많은 것을 봐왔고 아빠가 수고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둘째도 너무 좋아한다. 아직 셋째는 말을 못한다. 둘째가 너무 좋아해서 몸은 힘들지만, 행복한 느낌이 든다.

- 막내가 돌이 채 안됐다. 막내에게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아빠가 축구 선수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와이프도 아쉬워했다. 막둥이만 아빠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저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막둥이에게는 지도자로서 멋진 정조국을 보여주고 싶다. 저의 아이들에게는 모든 부모들이 마찬가지처럼 떳떳한 아빠, 존경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축구 선수 정조국으로서 아들에게 많은 것을 느꼈다. 저에게는 굉장히 큰 모험을 하게 했던 친구였다. 친구들한테 소개할 때 아빠가 축구 선수라고 이야기할 때,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 다양한 감독님 아래서 배워왔다. 어떤 감독님에게 지도자로서 영감을 얻었나.

어렸을 때부터 많은 감독님 모셨다. 국내외 감독님들을 모두 모셨다.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직 말을 못하겠다. 모든 감독님들이 장단점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메모를 해놨고, 저에게 맞게, 팀 구성에 맞게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들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선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선수들의 마음을 사기 전에 그런 자격이 되는지,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이 지도자를 평가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 선수들이 인정할 수 있는 감독,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움과 경험을 통해 단단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조언도 구해야 할 것 같고, 제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야 할 거라 생각한다.

- 만약 본인이 지도자라면 19세 정조국에게 하고 싶은 말은.

냉정히 말해주고 싶을 것 같다. 다른 선수에게는 못하겠지만 저 자신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프로가 아니다.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땐 천방지축이었고 나밖에 몰랐다. 나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골 넣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철부지였고, 당돌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프로선수로 만들어주신 가장 존경하고, 축구계 아버지인 조광래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믿고 기다려주시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감독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었다. 그분의 제가 있었기 때문에 프로선수 정조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 지도자로서 못을 박았다. 다른 선후배들처럼 방송에 대한 욕심은 없는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로 예능이 성향에 맞지 않다. 제가 잘 못한다. 예능이나 방송에 출연하면 지도자로 가는 길에 큰 도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그것을 봤을 때, 가볍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보수적인 면이 강해서인 것 같다. 저도 많은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다. 선택의 폭이 넓었다. 제가 가장 잘하는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 결과가 지도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왜하냐고 하는데,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자신도 있다.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겠지만 지도자로서 K리그 구성원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바른 길, 좋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 와이프에게 처음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는가. 더불어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와이프에게 언뜻언뜻 내비쳤다. 그렇게 말하면 '그만 둬'라고 쉽게 답을 했다. 사실 가장 아쉬워했던 사람이 와이프였다. 지금도 아쉬워한다. 공로상을 받을 때 영상을 보면서 오열을 했다고 들었다. 지금 또한 축구 선수 정조국을 사랑했고, 큰 팬인 와이프가 가장 아쉬워한다. 제 의사를 존중해주고 이해해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삭히는 스타일이다. 2명에게만 이야기를 했다. 와이프와 제주의 남기일 감독님과 많은 상의를 했다. 남기일 감독님은 감독이기 전에, 축구 선배로서 조언을 많이 해줬다. 감독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축구 선배로서 고민을 했고 길을 밟아왔던 분이다. 내려놓는 방법에 대한 팁을 주셨던 것은 사실이다. 감독님께도 '고생 많았다',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제가 나아갈 방향성도 잡아주셨다. 선수로서 고맙지만, 조광래 감독님이 저의 처음을 만들어주셨다면, 남기일 감독님은 제 마지막을 장식해주셨다. 내려놓을 수 있게 편안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본인이 득점왕에 오른 이후 4시즌 연속 외국인 선수들이 득점왕에 올랐다.

저 또한 2003년 프로 데뷔 이후 정말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경쟁을 했다. 할만하면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이 왔다. 처음에는 비싼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불만을 갖기도 했다. '나도 저만큼 기회주고 시간을 주면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외국인 선수들과 싸우면서, 경쟁하면서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다. 그런 외국인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고, 근성도 없었을 것 같다. 프로 선수로서 경쟁이 당연한 건데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도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가 많이 터지지 않는 게 안타깝게 생각한다. 득점 순위에 정통 스트라이커 선수가 없다는 게 저 또한 반성할 일이다. 아쉬운 일이다. 후배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히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선수들을 닮아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호날두가 될 수 없고, 손흥민이 될 수 없고, 이동국이 될 수 없다. 자기가 가진 게 다르기 때문에 똑같아 질 수 없다. 특징이 없는 선수가 많은 게 사실이다. 자신만의 큰 무기를 갖고 있길 바란다. 저는 골대 앞에서 슈팅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자신의 무기를 개발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부딪히면서 보고 배우면서 자기 색깔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 또한 선수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다.

- 프랑스에서 두 시즌 뛰면서 느꼈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제 나름 최선이었던 것 같다. 많이 노력했다. 만약 그때 못 갔다면 월드컵을 못 간 것 만큼 후회했을 것 같다. 지금은 루트가 다양해졌는데, 저는 오로지 유럽에 가고 싶었다. 꿈이었다. 감사한 기회였다. 축구를 보는 시점이, 인간 정조국으로서 시점이 넓어진 게 사실이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때의 저로 돌아간다고 해도,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평가는 다른 분들이 하시겠지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값진 경험이었다. 멋진 골로 임팩트도 보여줬다. 이후 후배들도 프랑스 무대를 누비고 있어 뿌듯한 감정도 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그 선택을 그대로 할 것 같다.

- 유명인 아내를 둔 생활은 어떤가.

저희도 다른 분들과 다르지 않다. 싸우기도 않고, 알콩달콩 살기도 한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공인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보여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저희 부부가 특별하고 그런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웃음이 날 수 있는 부부였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셋이기 때문에 좋은 영향력을 보여드리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앞으로도 재밌고 즐겁게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 축구 선수 정조국을 돌아보면,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2016년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스토리가 될 것 같다.

그 말씀을 정말 많이 하신다. 해피엔딩이 됐긴 했지만 결과를 알고 나서도,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2015년 겨울의 선택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만큼 저에게 서울은 첫 사랑이었고, 애사심도 강했다. 저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저의 아들의 한 마디에 도전을 해야했다. 제 축구 인생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광주까지 가지 않았다면 이런 자리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을 거다. 선수 생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쫓기지 않으려고 했다. 남기일 감독님이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셨다. 타이밍도 맞았다. 모든 부분이 잘 돼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도 하다. 모든 업적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후배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은 힘들고 어려울 때 쫓기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부담감을 내려 놓고, 편안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면 기회는 올 거라 생각한다. 그 기회를 어떻게 준비해서 잡느냐가 중요하다. 준비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도 평상시 '형도 33살에 MVP를 탔다'고 말한다. 어린 선수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들의 한 마디가 무엇이었나.

'아빠는 왜 안 뛰어?'라는 말이었다. 누구도 그런 말을 제게 하지 못했다. 부모님과 와이프 또한 못하는 이야기였다. 축구 선수였는데 경기에 안 나가는 게 이상했던 것 같다. 할 말이 없어서, 뒤로 돌아서서 창피했던 것 같다. 아빠로서 창피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런 말을 듣고 많은 결심이 섰던 게 사실이다.

- 또래 선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나.

대표적으로 (염)기훈이형은 가까운 선배이자 존경하는 선배다.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연락을 받았다. 그런 형들에게 조언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선수 생활을 잘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 어떻게 내려오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몸과 마음 모두 다치지 않고 잘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제게 모든 골은 소중하다. 가장 의미 있는 골이 있다면, K리그 데뷔골이다. 정말 많은 기대를 받고 당차게 프로에 도전했는데, 해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려웠고 힘들었다. 10경기 넘게 골을 못 넣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골을 넣은 게 부천SK였다. 페널티킥 상황에서 마에조노 선수가 키커였는데, 제가 공을 뺏었다. 조광래 감독님에게 제가 차겠다고 해서 데뷔골을 넣었다. 그 골 이후 탄력을 받아 12골을 넣었다. 그래서 의미 있는 것 같다. 가장 멋있었던 골은 청소년 대표 시절 하프 발리 슛인 것 같다.